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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구미
성철용 기자  |  ilman0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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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29  06: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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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구미
 
박통생가 금오산 001.jpg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불행한 분이 많았다.
이분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예비당첨자 시절이었고, 말년에는 불행하게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분들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정치로 장기 집권하다가 외국으로 쫓겨 났거나, 부하에게 암살당한 비운의 대통령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은 재직 시에 천문학적인 부정부패로 감옥살이의 수모를 겪은 바람직하지 못한 대통령이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식들을 부정 축재한 연유로 감옥으로 보내야 했던 역시 불행한 대통령들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의 비애나 불행은 개인의 차원을 넘은 국가적인 것이어서 우리 대한국민들도 불행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은어가 난무했다. 은어(隱語)란 변말로 '변'이란 남들이 모르게 저희들 끼리만 쓰는 암호스런 말을 말한다.
그중에 한국 역대 대통령을 '운전수 자격중'으로 비유하여 말하는 변말[은어]이 있었다.
대통령 퇴임 후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서 유명을 달리한 가장 불행했던 노무현 대통령 이전의 은어들이다.
 
          이승만 대통령: 국제 면허 운전자
          박정희 대통령: 모범 운전자
          최규하 대통령: 스페아 운전자
          전두환 대통령: 난폭 운전자
          노태우 대통령: 초보 운전자
          김영삼 대통령: 무면허 운전자
          김대중 대통령: 음주 운전자

박정희 독사진 001.jpg모범운전자로 가장 좋은 평을 듣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살아 생전에는 불행한 대통령이다가 사후에는 세종대왕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는 분이 되었다. 
그분의 친딸이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대통령으로 당선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숭앙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이 불행한 태통령이었다는 평가는 집권시절에는 지식인들 특히 대학생들의 데모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었다.
국민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되어 당선된 장면(張勉) 정부를 군사구테타에 의해 전복했다는 것은 당시 국민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의 업적 중에 재직 중에 또다른 군사구테타를 막은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분으로 인하여 전두한, 노태우처럼 군부 세력으로 정권이 이어진 것은 박대통령의 과(過)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또하나의 행복은 집권시의 시운(時運)이라고 생각된다.  
5.16 혁명이 일어날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세계가 다 정체되어 있을 때 박대통령이 거국적인 새마을운동으로 국력을 신장시켰고, 생활태도 개선 소득 중대 사업 사회 개발에 앞장섰던 것이다. 비록 군사구테타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경제 발전을 표방한 경제개발 정책이라 하여도 농촌에서는 통일벼로 식량 자급자족을 이룩하였고, 가난을 물리치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닦은 이가 바로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평가는 절장보단(截長補短)이란 말처럼 그의 장점이 단점을 덮을 수 있을 때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다.
박 정부가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개헌(維新改憲) 국민투표로 장기집권을 꾀할 때, 나는 투표장에 들어가서 도장으로 크게 'X'자를 찍고 나온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지금 Korea는 작은 나라인 대만,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아세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로 세계가 부러워 하는 잘사는 나라로 바뀐 후 박정희 대통령을 보는 눈이 나는 물론 국민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 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하여 암살 당한 직후의 이야기다.
시절이 뒤숭숭하면 은어와 파자가 유행하는 법이다. 그분의 이름 한자를 파자(破字)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파자(破字)란 '' 자를 '卯', '金', '刀', 또는 ''자를  '八', '王', '女' 와 같이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하여 만드는 수수께끼다.

'朴正熙'란한자를 朴(十, 八), 正( 一, 止) 熙(臣, 己, ....) 로 파자 할 수 있다. 이를 이야기로 꾸며서 
'십(十) 팔(八)년' 동안 독재 정치를 하다가 데모가 자꾸 나서 점쟁이에게 점을 쳐보았더니 점괘에 나오기를  '일(一)단, 그만 두어라(止)'고 하였다. 점괘를 무시하고 그냥 독재 정치를 계속하였더니 '신(臣)하인 김재규가 자기 몸(己)을 총으로 빵빵빵빵(....) '쏘아 죽였다.'
 
*.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박생가 지도 001.jpg
나는 국립현충원의 박대통령 묘소와 옥천의 육영수 영부인의 고택을 찾은 사람으로 오늘은 박정희대통령의 생가를 찾아왔다. 두 번째였다. 처음 왔을 때는 초가집을 중심으로 한 초라한 옛집뿐이더니 
박통생가 (49).JPG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주변은 성역화된 공원이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를 잘사는 세계 12위 국가 중의 하나로 올려 놓는데 초석이 되신 분이니 거부감은 없었다. 어떤 시골 노파는 그 생가를 보자마자 대성통곡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올라오더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으니-.
박통생가 구옥 001.jpg
박통생가 (105).JPG
 
박통생가 (126).JPG박통생가 (128).JPG
이 생가는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라서 대구사범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란 집이다.
생가(生家)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보고 가는 곳이 박대통령이 태어나서 자라서 공부한 책상과 호롱불이 있는 방이다.
나는 이에 앞서 그 앞에 있는 '민족중흥관'에 둘러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하고 그 안의 박태통령 내외분 사진 옆의 포토 포인트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칼라로 즉석에서 빼주는데 무료였다.
박정희 생가 001.jpg
 살아 생전 그렇게도 그 분을 미워하다가, 돌아가신 후 존경하게 된 무명 시인, 여행작가 lman이 그분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이었다.
살아계셨다면 97세로 나보다 20년 윗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조국의 발전상을 못보시고 35년 전 63세로 서거한 분이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중용(中用)해야 할 것이고 항상 무리한 행동은 삼가해야 하는 법이다.
박통생애와 업적 001.jpg
 박대통령의 생전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가 경부고속도(京釜高速道路)로 건설 같다.
 서울서 부산까지 총공사비 4백 29억원 예산으로 연인원 900만명을 동원하여 1968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5개월만인 1970년 7월 7일에 완공된 건국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당시 건설업자들, 경제학자들, 야당 국회의원들, 농민들까지의 결사 반대를 무릅쓰고 이룩한 쾌거였다.
당시 건설한 교량만도 346개, 터널 6개로 그 무렵 일본에 건설 중인 고속도로의 20%의 예산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일 내에 완공한 한민족 대 역사였다. 선 완공 후 보수(先完工後補修)였지만 경인고속도로(京仁高速道路)에 이은 두번째 고속도로였다. 이 경부고속도로 전국이 1일 권내 영역이 되었고, 이로 인해서 부(富)의 균점화(均霑化)가 앞당겨 지기도 하고, 구마속도로, 호남고속도로가 건설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 시도가 한국의 건설업체가 세계로 나가 '건설 한국!'을 이룩하게 뇌넊점 것은 물론이다. 
구미발전상 001.jpg 
  그보다 내가 더 부러워 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고향 구미(龜尾)를 발전시킨 것이다.
구미공업단지(구미IT파크)는 섬유공업으로 출발하여 이제는 42만이 사는 세계의 디지털전자, IT 산업의 리더로 성장하여 연 350억불을 수출하는 전진기지로 세계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컸으니 이 모두가 오로지 구미 출신 박정희 대통령이 남기고 간 업적이다.
우리가 어느 고장을 말할 때 그곳 출신의 성공한 분들을 이야기 한다. 고향을 빛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구미에는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등 학자와 사육신 하위지 등도 있지만 역대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고장이다. 박 대통령은 그 구미를 빛내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잘 사는 도시로 발전시킨 구미의 영웅이었다.
이에 비하여 민도가 낮던 시절에 신라(新羅)에 패망하여 역사상 수없는 차별과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백제의 망국인의 후예였던 호남인들이 한(恨)을 풀기 위하여 전라도 전체 도민들이 똘똘 뭉쳐서 수 없는 타지역 국민들의 욕을 감수하면서 호남 출신인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분은 무엇으로 전라도 도민들에게 그 보답을 하고 갔는가를 구미의 발전상을 보니 묻고 싶다.
박통생가 (145)동상.JPG
 
박통생가 (146)님이 잠든 곳에 박정희.JPG
 박정희 대통령 동상 앞에 서니 그를 둘러싼 비명(碑銘)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육여사 죽음을 애도한 인간 박대통령의 시(詩)  '님이 고이 잠든 곳에', 그 시 중 끝 구절이 심금을 울린다.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님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
 세계를 다니면서 나는 늘 Korea를 한탄하여 왔다.
미국에는 링컨, 인도에는 간디, 베트남에 호치민, 필리핀에 호세 리잘(Jose Rizal), 싱가포르에 리광유가 적도상(赤道上)에 있는 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복지국가로 만들었는데 한국엔 그런 누가 있는가 하고.  한국에는 '농업국을 공업국가'로,  '가난을 소비가 미덕인 시대'로 바꾼 박정희란 영웅이 있는 것을 잊고서-.
 

성철용 기자  ilman0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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